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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홈플러스 몰락의 30년 역사

by 구반장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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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장을 보던 홈플러스. 어느새 '폐점 세일' 현수막이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신 적 있으신가요?

2025년 3월 4일, 한때 대형마트 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습니다.

30년 가까이 우리 곁을 지켜온 홈플러스는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요?

삼성이 만든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1997년 9월 삼성물산 유통부문으로 대구에 1호점을 열며 시작됐습니다.

당시 정부가 1996년 국내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대형마트 진출 규제가 풀렸고, 이것이 홈플러스 탄생의 배경이 됐습니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업 시작 불과 2년 만에 삼성은 영국 최대 슈퍼마켓 기업인 테스코에 경영권과 지분 49%를 넘겼습니다. 2011년에는 삼성물산이 잔여 지분마저 모두 매각하면서 홈플러스는 테스코의 100% 자회사가 됐습니다.

이승한 회장의 전성기, '글로컬 경영'의 승리

홈플러스가 진짜 성장한 건 1999년 이승한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부터입니다.

삼성 공채 11기 출신인 이 회장은 '글로컬 스탠더드'라는 독특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경영 시스템은 세계적 기준을 따르되, 상품 구성과 마케팅은 철저히 한국 시장에 맞춘다는 전략이었죠.

테스코 본사는 홈플러스 간판을 '테스코'로 바꾸려 했지만, 이승한 회장의 끈질긴 설득으로 홈플러스 브랜드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문화센터를 도입해 창고 같던 대형마트에 문화공간을 만들었고, '최적가 보상제'라는 공격적 가격 정책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홈플러스 플러스 가격이 착해" 이 중독성 있는 CM송은 BTS를 탄생시킨 하이브의 방시혁 회장이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999년 업계 꼴찌 12위였던 홈플러스는 4년 만에 업계 2위로 올라섰고, 10년 만에 매출 10조 원대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2014년에는 매출 8조 5,682억 원, 직원 2만 명, 점포 125개를 운영하는 거대 기업이 됐습니다.

까르푸 인수와 홈에버의 탄생

2008년 홈플러스는 프랑스 대형마트 업체 까르푸가 운영하던 홈에버 매장 36개를 2조 3천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까르푸는 세계 2위 유통 기업이었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실패했습니다.

프랑스인 기준으로 높게 설계된 진열대, 채소 매장 부족, 창고형 매장 컨셉 등이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홈플러스는 이 매장들을 인수한 후 철저히 한국화했고, 성공적으로 통합해냈습니다. 심지어 전기 규격까지 다를 정도로 시스템이 달랐지만 모두 재정비했습니다.

MBK 인수, 그리고 운명의 분기점

2014년 테스코 본사에서 회계 부정 사태가 터졌습니다. 홈플러스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테스코 본사가 자구책으로 우량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2015년 10월, 홈플러스는 7조 2천억 원이라는 역대급 금액으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인수됐습니다.

문제는 MBK의 인수 방식이었습니다. MBK는 LBO(차입매수)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했는데, 이는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사는 갭투자'와 같은 원리입니다. 신규 차입금 2조 7천억 원과 자사 펀드 3조 2천억 원을 투입했고, 기존 차입금까지 승계했습니다.

LBO가 성공하려면 기업 실적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적은 투자금으로 큰 차익을 얻지만, 가격이 떨어지면 완전히 망하는 구조죠.

MBK 인수 후 10년, 추락의 시작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2015년은 한국 유통 시장의 분기점이었습니다.

쿠팡의 로켓배송, 중국 전자상거래, 모바일 커머스 등 온라인 쇼핑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홈플러스 매출은 2014년 8조 5,682억 원에서 2023년 6조 9,315억 원으로 약 19% 감소했습니다.

MBK 경영 하에서 홈플러스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멈췄습니다. 이승한 회장 시대의 '최적가 보상제'나 대규모 문화센터 투자 같은 공격적 전략이 사라졌고, 마케팅 비용이 줄면서 고객 발길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2021년부터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대형 납품업체들이 정산 주기를 단축하고 거래 한도를 축소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홈플러스는 부동산 리츠 펀드에 건물을 매각한 후 다시 빌려 쓰는 '세일앤 리스백' 거래를 진행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현금을 확보했지만, 매년 약 4천억 원의 임대료 부담이 생겼고 이는 MBK의 LBO 이자 상환 부담과 겹쳐 회사를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기업회생절차 신청과 대량 폐점

2025년 3월 4일, 홈플러스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습니다. 신청 불과 11시간 만에 회생절차 개시가 인가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누적 적자는 5천억 원 이상, 부채 비율은 1,400%를 초과했고, 세금과 전기세 등 미납금만 약 900억 원에 달했습니다.

2025년 8월 13일, 홈플러스는 임대료 협상이 진전되지 않은 15개 점포의 순차적 폐점을 발표했습니다. 시흥, 가양, 일산, 계산, 안산고잔, 수원 원천, 화성동탄, 천안신방, 문화, 전주완산, 동촌, 장림, 부산감만, 울산북구, 울산남구 점포가 문을 닫았습니다.

2025년 12월에는 추가 5개 점포가, 2026년 1월에도 5개 점포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2개월 만에 10개 점포가 사라졌습니다.

경쟁사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같은 시기 이마트는 온라인 채널과의 시너지를 강화하며 멀티채널 전략으로 성공하고 있습니다.

2023년 매출은 약 14조 원으로 시장점유율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롯데마트는 '트레이더스'를 통한 프리미엄 전략으로 차별화하며 약 6조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홈플러스는 이 두 회사 사이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홈플러스 몰락의 5가지 원인

첫째, 이승한 회장 퇴임 이후 리더십 공백이 생겼습니다.

테스코에서 파견된 CEO들은 한국 시장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과도한 부채금융이었습니다.

7조 원대 인수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면서 이자 부담만으로도 회사가 휘청거렸습니다.

셋째, 온라인 커머스 성장에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성장했지만,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경쟁에만 집중했습니다.

넷째, 마케팅 전략이 후퇴했습니다.

'가격이 착해'던 시절과 달리 적극적 투자를 회피하면서 고객 신뢰도가 떨어졌습니다.

다섯째, 임대료 부담이 악화됐습니다.

세일앤 리스백으로 일시적 현금을 확보했지만 구조적으로 임대료가 증가하면서 점포 폐점이 가속화됐습니다.

홈플러스의 미래

2025년 12월 29일, 홈플러스는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 구조조정을 완료하면 회생할 수 있지만, 인수자가 없다면 2026년 5월 이후 청산 절차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단순한 한 기업의 몰락이 아닙니다. 직원 약 2만 명, 협력업체 10만 명, 수천 개의 입점 상인들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한 점포가 문을 닫으면 평균 약 1,00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노조의 주장처럼, 홈플러스의 위기는 국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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